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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적 체계 임동락 202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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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영적 체계            본문: 2:15~22

여러분! 예수님은 사람을 만나려고 세상에 오신 주인이십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에게는 깨달음이 있었고, 예수님의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개중에는 부자들, 지식인들, 세리와 죄인들, 여성들과 아이들 등을 망라해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환영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었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집니다. 오늘 본문의 부름 받은 레위는 너무 기뻐서 자기 집에서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황인희 권사님이 큰 아들 결혼식과 돌잔치를 너무 기뻐서 집 앞마당에서 열은 것처럼요. 마태는 예수님을 손님으로 초청하고, 또 자기 친구들도 많이 초대했습니다. 마태의 친구들은 대개가 세리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마태 한 사람이 회개하고 따라오는 것을 기뻐하셔서 초대에 응하여 같이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본문2: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창기와 같은 죄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참 도를 말하는 선한 선생님(예수님)이 어찌하여 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힐문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잔치에 참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줄 알고 계셨음에도 그들과 잔치 자리에 함께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 함께 음식은 먹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와 함께 식사하신 것은 자신을 그들과 친구로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복음을 전하려면 상대방과 같은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쏠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아멘! 예수님은 의사로 오셨다는 것이죠. 의원은 병자의 병을 치료하여 주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는 그들이 어부로서 일하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는데, 왜 레위는 세관에서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세리 레위가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민족의 반역자로 비난을 받고 열심당원에게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육신을 갖고 사는 동안 문제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직면한 문제가 있음을 알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신데도 금식도 하지 않고 상종하지도 말아야 할 세리들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아 음식을 잡수셨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께 와서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금식을 하는데 예수님은 그들처럼 하지 않아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처럼 금식을 하셨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금식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금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금식은 레위기 16장과 23장에 등장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만 금식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거치면서 속죄일에 금식하는 것 외에도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날과 부림절을 기념하며 금식하는 전통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는 전통을 지켰습니다( 18). 월요일과 목요일 각각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금식했습니다.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금식을 많이 만들어서 실행했을까요? 그것을 자신들의 의로 내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위선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이 금식 문제로 예수님을 공격한 것은 적반하장입니다. 어떤 사건에 시시비비를 가리려면 먼저 자신이 말씀대로 행하고 있는지를 체크하고, 자신의 주장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말을 듣고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마가복음 2 19-20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른다는 것은, 신랑이 어떤 목적에 의해서 들어 올려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함께 잔치하는 동안에는 금식할 필요가 없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는 금식하며 매달려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절박한 상황에서만 금식하라는 뜻이 아니라 금식할 상황이 주어지면 금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당시 유대인들처럼 금식을 의무 규정으로 만들어서 형식적인 종교행사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식을 하든, 헌금을 하든, 기도를 하든 이렇게 주일에 예배를 드리든 강제로 하는 종교행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금식을 하든지 헌금을 하든지, 이렇게 예배를 드리든지 하는 그 대상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21-22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아멘! 예수님은 금식에 대한 답변을 하시면서 두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①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욱 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 한다고 하였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새 포도주가 팽창할 때에 부대가 터져서 부대도 버리고 포도주도 버리기 때문이죠. 새로운 영적 체계에서는 교인이야 많든지 적든지 진리를 바로 밝히고 한 사람이라도 바로 세우고 영을 살려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참 빛의 등대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이시죠!생베 조각비유와새 포도주비유는 두 가지이지만 하나입니다. 즉 예수님의 생명력이 충만한 복음이 낡고 생명력이 없는 바리새인들의 전통과 의식에 갇힐 수 없고 결국 유대교 전통도 복음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의 새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옛 율법의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영적 체계는 한 마디로 예수 복음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1세기 최대 화두는 변화입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모두 망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마귀의 자녀로 살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변화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분상으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허우적대거나 포기하고 있지 않나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땅은 우리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우리는 장차 천국에서 왕 노릇할 사람들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습니다. 자신은 죽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사셔야 우리가 영원히 성공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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