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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말씀 임동락 202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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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된 말씀                    5:3~10

8가지의 복 팔복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첫 번째 사다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3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본문에 쓰이는 가난하다는 웅크리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의지할 곳 없는 거지 나사로의 모습, 두 렙돈을 바친 과부에게 쓰인 가난한이라는 단어가 이 단어입니다. 궁핍함보다 훨씬 심한 절대빈곤의 상태를 말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구걸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 괴롭힘과 고난을 당하고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가난한 자입니다. 지금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그 힘들고 답답한 환경이 원수가 아닙니다. 원수는 내 앞에, 내 안에 있는 욕심이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아직도 내 힘으로 잘 살아볼 수 있다고 바둥거린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복을 주려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이제 손들고 돌아오라고, 가난하고 애통한 환경으로 나를 몰아가시는 것이 복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가난한 것을 못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 번째, 애통하는 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4절에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함은 가까운 가족이 죽었을 때에 극한 슬픔을 의미합니다. 정말 가슴을 찢는 슬픔입니다. 바로 내 죄 때문에 그런 슬픔으로 울어야 합니다. 죄를 슬퍼하며, 애통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로를 얻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엉엉 우는 자를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 세 번째 사다리는 온유한 자로 나갑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어떤 자입니까? 착한 사람입니까? 얼굴이 온유하고, 표정과 말씨가 온유하다고 해서 온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온유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짐승을 길들일 때 쓰는 말로 길들여 주인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날마다 인정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길들여지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진짜 온유는 진리를 붙드는 것이고, 진리를 붙들기 위해서 순교까지도 하는 강함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그야말로 외유내강한 사람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가 아무리 부드러워도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은 온유는 가짜입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온유는 내게 많은 재주와 은사와 능력과 지위와 권세가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능력만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고 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는 하나님 뜻이 내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주리고 목말라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인생의 목적, 결혼의 목적이 거룩이라는 것을 알고, 그 거룩을 원할 때 주님이 내 인생도 가정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하는 굶주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하는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를 더 주리고 목마르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다섯 번째 단계부터는 이제 이웃과의 관게로 나아가게 합니다. 7절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은 창자가 아파 끊어지듯이 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아파하고,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고, 나를 이해하듯 남을 이해하고, 내게 관대하듯 남에게 관대한 것이 긍휼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시마다 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분노와 상처로 아파서 다 정신병원에 있어야 될 사람들입니다. 여섯 번째 사다리는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욕심 없는 빈 마음이나 행위의 청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 죄를 고백하며 흘리는 눈물이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 합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나는 잘못한 게 별로 없어. 이런 사람이 청결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부도덕과 비리를 저질렀어도 그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거듭난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불신자는 결코 볼 수 없는 하나님이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자연만물을 통해서도, 환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마음 속에 두 마음이 있어 날마다 싸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청결입니다. 내가 날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너무나 아플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가 청결한 자입니다. , 이렇게 되는 사람은 이제 일곱 번째는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는 거예요. 9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천국에 속한 사람은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화평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무려 400번 정도 나옵니다. 성경은 평화를 그렇게 중요시합니다. 화평케 한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내 속에서의 평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웃과 화평하게 되고, 그 일을 통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목 제물이 되어 주셨다면, 우리도 남을 위해서 화목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수동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서 갈등과 다툼과 원망의 자리에 들어가 화목 제물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제 여덟 번째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합니다. 10절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내가 주님 때문에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청결하게 되고 화평케 되면 뭐가 기다리고 있다구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팔복대로 사는 사람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핍박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포기해도 우리는 괜찮습니다. 이 땅에서의 가난과 핍박은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는 세상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포기 못해서 영원한 천국을 포기한다면, 그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나라입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우리는 천국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 죽고 싶은 고난을 통해서 이제 가난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애통해야 합니다. 온유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로 나아가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화평케 해야 합니다.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수준까지 가는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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