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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죽음 | 임동락 | 2026-02-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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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죽음 벧전 3:18~22 사순절과 주님의 죽음은 성도의 신앙생활에 가장 소중한
교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다(18) 불의한 인간을 위해 대신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그는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림을 받으셨습니다. 육은 인간인 그리스도를, 영은 부활하신 생명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도 선을 행하고, 또
고난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도들의 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엡 3:2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구원의 길을 여신 것이고, 부활은 구원을 보증합니다. 따라서
죽음도 부활도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이에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다(19-21)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죽음으로 무덤에 들어가셨고, 영으로는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그는 죄를
이기신 것과 그 악한 영들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이며 최종적인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고 있는 이 당시의 나그네 같은 성도들은, 노아와 그의 가족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하는 것은 노아와 그 가족처럼 고난과 핍박을
받는 성도들이 결국에는 영원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이를 통해 고난 받는 이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를 위한 최종적 제사이며, 부활은
구원의 보증입니다. 성도는 심각한 핍박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전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7절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가 오늘 본문에서 나타납니다. 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우리의 삶에서 아무리 많은 고난이 있다고
할지라도 죽음보다 더 큰 고난은 없습니다. 지금 너무 힘들고 무너질 것 같은 고난이 있더라도 그것이
절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보다 크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설명하며 성도들의 고난이
그들에게만 있었던 고난이 아니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반복적이지 않고, 단번이었습니다. “단번에”라는 말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독특함과
충분하고, 완료된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를
위하여 고난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은 불의한 자들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남을 위해서 자신이 대신 고난을 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 나와 있듯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소아시아 일대에 흩어져 고난 받으며 살던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을 잃지 않고, 잘 견뎌낼 것을 격려하기
위한 서신입니다. 베드로는 박해 받는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도 고난 받으셨음을 설명하며 위로와 격려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하나님 앞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지만 예수님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성경 여러 구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이유들을
설명합니다. 에베소서 3장
12절에서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히브리서 10장 19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증거하며, 이 외에도
많은 곳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함을 증거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도 고난 당하셨음을 설명하며
현재 고난을 당하는 우리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였고, 그 경험을 뒷받침 하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죄 때문이고, 단번에 이루어 졌으며, 고난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목적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있는 고난의 목적 역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여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본문은 그 이후의 예수님의 행적을 설명합니다. 19절 말씀에,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옥’은
어디이며, 영들에게 선포하셨다고 했는데 이들은 누구입니까? 노아
방주 때 구원 받은 사람은 노아 가족 여덟 명입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외면하다가
모두 멸망 당해 죽었습니다. 20절 말씀이죠.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지어지는 기간이 얼마입니까? 무려 12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은 기다려 주셨습니다. 심판이 결정
된 이후에도 하나님의 기다림과 인내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랜 기다림과는 다르게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는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적은 수의 사람들이지만 당대의 의로운 남은
자들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흩어 있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받고 있는 박해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지만 노아의 방주 말씀을 통해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
구원을 얻게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 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재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도 위로의
말씀이 됩니다. 우리 삶에도 고난이 다가올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우리에게 다가온 고난이 언제 끝날지 모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22)아멘! 지금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그런 주님이 특별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하나님 보좌 우편입니다.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도
승리와 영원한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악의 세력을 깨뜨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미래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보장되어 있습니다. 창조된 천사들과 능력들과 권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합니다, 그
분이 우리의 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셨고, 우리는
그분의 보혈로 말미암아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중한 하루를 세상에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주님께로 나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젠가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방주 안에서 안전하게 불 심판을 통과하여 새롭게 열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무궁히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살아 갈 때에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되 고난 받을 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기쁨과 소망으로 용기를 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부끄럽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를 세상에 널리 전함으로써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밤하늘의 별처럼 천국에서 길이 빛나는 아름다운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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